목업 깎던 사원
마감이 언제에요?
2024-02-20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목업은 필수불가결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매뉴얼 입사 전에는 그래픽 디자인 회사에서 목업이 이렇게 다양하고 많이 쓰일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그 목업을 만들 줄 몰랐다. 나는 단지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어 봤고, 3d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목업을 마구 생산하고 있었다 ㅎ. 지난 3년간 매뉴얼에 몸담으면서 몇 개의 목업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중 몇 종류가 쓰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꽤 많이 만들었다는 정도(?)이다.
굳이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 게 목업인데 왜 목업을 새로 제작하느냐라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가끔. 하지만 새 술은 새 포대에 담듯 매뉴얼의 자랑스러운 디자인! 헌 목업에 올릴 수 없다. 클라이언트도 많이 봤던 목업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는 다 알고 있다. 😅
지금도 그렇지만 초반에는 목업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 제작자로서 목업이 좀 더 실사 같고 (렌더링일 경우) 멋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업은 디자인을 돋보이는 역할을 할 때 목업다움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목업이 너무 화려하거나 현실성 있는 연출 때문에 디자인이 조금이라도 묻히게 된다면 디자이너 입장에서 그 목업은 좋은 목업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지에서 목업과 디자인이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목업은 조금 톤을 다운시키는 면이 오히려 좋은 목업이 될 수 있다.
오늘은 목업을 부탁하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변명하기 위해 설명회를 열어 보겠다..는 농담이고, 목업은 어떻게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작업자는 목업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공유하기 위해 글을 작성해 본다.
목업은 크게 사진 기반으로 한 ‘촬영 목업’ 과 3d 프로그램을 이용한 ‘렌더 목업’ 이 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작업자는 이렇게 나누고 있다. 그 중 오늘은 3d 프로그램을 이용한 목업 프로세스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다.
먼저 매뉴얼에는 목업 게시판이 따로 있다. 게시판에는 그간 만들어온 목업들이 적용 예시 사진과 함께 다운로드 링크가 되어있다. 사진을 보고 이 목업을 적용해도 괜찮다고 판단되면 우측에서 다운로드를 해 파일을 열어 적용하면 된다. 위 5가지의 목업 중 아래 3개는 3d 프로그램을 이용한 렌더링 목업이다. 렌더링 목업은 작업 내용에 따라 사진보다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가끔은 컴퓨터 성능에 비례해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만드는 이유는 비용 절감 목적이 크다. 3d 목업은 우리가 당장 구하기 어려운 소품이나 지류, 촬영 환경을 대체하는 좋은 대안이다.
작업의 시작은 갑자기 찾아온 쪽지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디자이너 분들이 목업을 요청 주시면 보통 ai 파일이나 이미지들을 함께 보내주신다. 열어보자. 두근두근. 신난다.
파일을 열어 보면 레퍼런스 이미지와 2d 그래픽으로 작업된 ai 파일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은 노출 재본으로 완성된 책 목업 요청이었다. 책을 3d 모델링 하는 건 (디테일에 차이가 있겠지만) 크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노출 재본은 책이 묶이는 쪽 디테일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별로 자신 없었다). 일단은 서로 작업 기한을 확인하고, 예상시간을 말씀드리고, 스케줄을 조정한다. 그리고 모델링을 시작한다.
막상 사진만 보고 작업을 시작하려니 막막했다. 커버는 어느 정도 두께감이 있는 게 좋을지 노출 재본에는 어떤 지류를 사용하는지… 등등. 전에 백화점에서 받은 책자가 생각나서 바로 가져왔다. 대충 파악하고 라이노를 켠다. 보미 님 ai 파일을 PDF로 출력해서 라이노에 임포트 시킨다.
상단이 막 임포트 시켰을 때 모습이고 하단이 대략 모델링을 끝낸 모습이다. 참 쉽죠? 이렇게 하면 3분의 1이 완성이다. 사실 굳이 라이노로 모델링을 할 필요는 없다. c4d는 모델링을 수정하며 바로 렌더로 확인할 수 있어서 수정 사항에 대응이 훨씬 간편하고 쉽다. 이유는 많지만 나는 라이노 모델링이 좀 더 익숙하고, 아무래도 c4d 모델링은 어색하다 (라이노 제품설계 기반) (c4d 컨텐츠용 3d 기반). 굳이 목업을 위한 3d 파일이 제품 디자인처럼 정확할 필요는 없지만, 정확한 수치 없이 점토로 빚는듯한 모델링은 아무튼 어색하다. 애초에 맥에서 3d 하려는 게 아이러니지만… 아무튼 이렇게 모델링을 끝내면 렌더링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임포트 시킨다.
3d 파일을 렌더링 프로그램에 임포트 하면 볼 수 있는 첫 모습이다. 여기서 디자인과 재질, 라이트 효과 등등을 조정한다. 디자이너분들이 레퍼런스로 보내준 이미지들을 참고해 배경과 빛을 조절 한다. 하나 하나씩 이짝 저짝 으쌰으쌰 조절 하다보면 완성 할 수 있다.
이렇게 완성하면 디자이너들과 1차 공유한다. 이후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는 몇 번의 핑퐁이 있다 보면 목업 작업이 완료된다. 개중에 범용적으로 활용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 목업들은 PSD 파일로 Smart Object 레이어를 만들어 다른 프로젝트에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완료한다.
마치며
간략하게 목업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소개해 보았다. 좀 더 디테일하게 살펴보려면 단계가 많고 반복되는 부분도 많아 많이 생략했다. 목업의 특성상 프로젝트의 시안이 완료되기 직전 또는 발표 PT 직전에 시작해서 하루 이틀 내에 급하게 끝내야 하는 작업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특히 3d 목업의 경우) 돌아보면 아쉬운 목업들도 많고 고치지 못하고 제출된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내 기준에는 완성에 가까운 작업들도 작은 디테일 때문에 쓰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결국에는 이야기를 나눠도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놓친 디테일들과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경험치로 쌓였다. 이때는 이런 점 때문에 수정이 있었구나 느끼며 하지만 조금 더 빨리 알아 채지 못한 나를 자책한다. 그럼에도 매번 조금씩 나아지고 있겠지 위안 삼는다. 사실 빨리 나아지고 싶은데 요즘 자꾸 까먹는다.
끝.